본문 바로가기
  • 일상행복 주식회사
서울 여행

북촌 계동길의 조선시대 우물터, 주문모 신부가 세례를 준 ‘석정보름우물’

by 일상행복 주식회사 2026. 6. 12.
반응형

북촌 한옥마을의 정겨운 가게들과 카페를 지나 중앙고등학교 쪽으로 언덕을 오르다 보면, 발걸음을 멈추게 하는 우물터가 나타납니다.

무심코 지나치기 쉽지만, 이곳은 조선 시대부터 근대사에 이르기까지 아주 특별한 사연을 간직한 '석정보름우물'입니다.

오늘은 북촌 여행길에 만난 작지만 위대한 유적지를 소개해 드릴게요.

 

중앙고등학교 올라가는 길 우측에 있는 석정보름우물

 

서울에 상수도가 본격적으로 도입되기 전인 20세기 초까지 북촌 주민들의 주된 음수 및 생활용수로 사용했던 우물터입니다.

우물물이 15일 동안은 맑고, 15일 동안은 흐려진다고 해서 석정보름우물이란 이름이 달렸다고 합니다.

 

조선 시대에는 이 석정보름우물을 마시면 아들을 낳는다는 전설이 있어 인근 주민뿐만 아니라 멀리서도 찾아올 만큼 인기가 높았다고 합니다.

삭정보름우물은 오랜 세월동안 주민들의 식수원으로 사용하다가 1970년대 상수도가 보급되면서 폐쇄되었고, 지금은 현재 모습대로 복원되어 보존되고 있습니다.

 

북촌일대에는 지금도 남아있는 우물터가 있는데요.

조선시대에 궁중에서만 사용했다고 하는 복정우물이 있습니다.


삼청동, 북촌 코리아목욕탕과 복정우물

 

 

 

석정보름우물은 우리나라 최초의 선교사였던 주문모 신부와도 인연이 있습니다.

 

1794년 중국에서 선교를 위해 압록강을 건너온 중국인 주문모 신부는 1801년 새남터에서 순교하기 전까지 계동에 있는 최인길의 집에서 숨어 지냈습니다.

조선 땅에서 최초로 지금의 천주교 가회동성당 자리에서 미사를 봉헌할 때 이 이물물을 사용했다고 전해집니다.

 

[북촌] 한국 최초의 선교사 주문모 신부가 미사를 열었던 천주교 가회동성당

 

 

아울러 1845년 한국인 최초의 신부인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도 이 지역에서 짧은 사목활동을 하는 동안 이 석정보름우물을 성수로 사용했다고 전해집니다.

 

석정보름우물은 천주교 박해 당시 많은 순교자가 발생하자 갑자기 물맛이 써져서 한동안 사용하지 않았다는 이야기도 전해 내려오고 있습니다.

 

 

석정보름우물 서울 종로구 계동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