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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여행

보신각(종각) 야경 및 보신각 앞 지하철 수준점

by 일상행복 주식회사 2025. 11.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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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신각은 종로구 관철동에 있는 한옥으로 흔히 종각(종루)이라고도 불리는데요.
매년 12월 31일 밤에 열리는 제야의 종소리의 서울지역 타종행사가 열리는 곳이죠.

 

보신각은 알다시피 조선시대 도성의 문을 열고 닫는 시간에 종을 치거나, 화재와 같은 긴급한 상황이 발생했을 때 종을 치던 곳이었습니다.
원래 보신각은 조선을 건국한 태조가 1396년(태조 5), 지금의 인사동 어귀인 청운교 서쪽에 각을 짓고 종을 걸어 종소리에 따라 각 성문을 열고 닫게 하였습니다.

 

지난번 친구를 만나기 위해 보신각에 갔는데요.

보신각 야경과 함께 보신각 앞에 있는 지하철 수준점이 있어서 이것이 무엇인지 정리했습니다.

 

보신각 야경

 

보신각은 1413년(태종 13) 종묘 남쪽 길에 5칸의 층루를 세우면서 현재의 보신각 자리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1440년(세종 22)에 헐고 다시 지었는데, 2층에 종을 달고 1층으로는 사람과 말들이 통과하도록 했습니다.

 

보신각의 새벽 종은 파루라 하여 오전 4시경 33천에 고하는 뜻으로 33번을 쳐서 성문을 열었고, 저녁 종은 인정이라 하여 오후 7시경 28수를 뜻하는 28번을 쳐서 성문을 닫았다고 합니다.
또한 도성 안에 큰 화재가 나도 종을 쳐서 주민들에게 알리기도 했습니다.


보신각은 임진왜란 때 불에 탔고, 1619년(광해군 11)에 누각을 새로 지었고, 원각사종을 옮겨 걸었습니다.
하지만 1686년(숙종 12) 1월에 다시 불이나 중건되었습니다.
 
1869년(고종 6) 운종가 일대에 대화재가 발생하여 종루는 시전 건물과 함께 다시 불에 탔고, 그해 10월에 다시 건립되었습니다.
이 종루 건물에 1895년 3월 15일 고종이 ‘普信閣(보신각)’이라는 현판을 내려 이때부터 보신각으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보신각 현판은 고종이 썼으나 한국전쟁 때 전소해 다시 지은 후 이승만 대통령이 쓴 것입니다.

 

보신각 앞 종로(종각역) 야경 모습

고층건물이 즐비한 곳에 이렇게 한옥으로 지어진 보신각은 더욱 운치있는 존재가 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보신각 건물 역시 1915년 도로 보수 때 약간 뒤로 물러나 중건되었고, 현재의 건물은 1979년 광복절 때 850평으로 확장해 지은 것입니다.

아쉽게 보신각에 있던 보신각 동종(보물 제2호)은 균열이 생겨 경복궁 안에 보관 중이며, 현재의 종은 국민 성금으로 만들어 타종행사에 사용하고 있습니다. 

 

종각에서 제야의 종 타종의식을 치른 것은 1953년이고, 각계 시민대표가 참여하는 타종행사는 1994년부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제야의 타종행사 외에 예전엔 3.1절과 광복절에 타종행사를 하기도 했고, 지금은 매일 정오에 일반인 타종행사 신청자들도 타종할 수 있다고 합니다.

 

보신각 앞에 있는 지하철 수준점

 

수도권 전철의 높이와 깊이의 기준이 되는 원점입니다.

이 수준점을 기준으로 지하철 선로의 깊이와 터널의 높이, 역으로 쓰는 건물의 높이를 가늠했던 것입니다.

 

서울 지하철 계획의 첫 작업은 수도권 전철 1호선의 기준이 될 수준점을 설정하는 것이었는데요.

보신각 울타리 안에 가로 세로 25cm, 높이 20cm의 화강암 수준점을 설치해 서울시 지하철 공사를 위한 모든 측량 작업을 수행했습니다.

 

지하철 수준점 중앙에는 지름 7cm, 길이 12cm의 놋쇠 목이 박혀있는데요.

수도권 고속전철 수준점. 1970. 10. 30.이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종로 도로가 확장되면서 보신각이 현 위치로 이전되었고, 수준점 역시 이전되어 지금은 기준점 역할을 상실했다고 하네요.

이제 서울 지하철 1호선 사업의 시발점이라는 상징성만 가지고 있게 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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