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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상행복 주식회사
서울 여행

탑골공원 가을 풍경

by 일상행복 주식회사 2025. 11.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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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골공원하면 뭐가 생각나나요?

 

노인들의 아지터, 소변냄새 등 지저분함, 노인 성매매, 장기와 바둑, 칡칡함 등 노인을 위한 공간이 되어 부정적인 이미지가 가득한 공간이 되어 왔습니다.

그러다 보니 일반 시민들이 들어가기를 망설이는 곳이 되었고, 외국 관광객들에겐 깨끗하고 밝은 서울의 인상을 부정적으로 전달할 우려가 있어 왔습니다.

 

탑골공원은 조선시대 세조 때 세원 원각사가 있던 절터에 세운 한국인이 세운 최초의 근대식 공원이고요.

이곳에서 1919년 3월 1일, 기미독립선언문을 낭독하며 3.1 만세운동을 시작한 역사적인 의미를 간직한 곳입니다.

 

그러다 보니 오래전부터 독립정신이 깃든 탑골공원을 문화재적 가치를 간직한 공원으로 회복하고, 노인들을 위한 공간 대신 시민들 누구나를 위한 공원으로 바꿔야 한다는 여론이 꾸준히 제기되었던 곳입니다.

이런 추세에 금년 하반기 들어 종로구에서는 공원 담장 주변에 있던 바둑판과 장기판 등을 철거하면서 오락행위 금지를 시행하고 있고, 음주와 흡연 등 일체를 금지하고 있습니다.

 

탑골공원원각사지 10층 석탑이 있어 탑동공원, 불교의 탑을 의미하는 영어인 파고다공원으로 불리다가 1991년부터 공식적으로 탑골공원으로 부르고 있습니다.

 

점심시간에 탑골공원에 잠시 들렀는데요.

노인들을 위한 공간에서 지자체에서 원하는 대로 성지화가 조금이라도 되고 깨끗해졌는지 궁금했습니다.

 

탑골공원 정문인 삼일문

 

1919년 3.1 운동 당시 독립선언문 낭독과 독립만세를 외친 곳으로, 사적으로 지정돼 있는데요.

사진에서 보듯 여전히 탑골공원을 찾는 사람 90%는 노일들입니다.

다만, 입구에 항상 교회나 보수성향의 사람들이 시끄럽게 떠드는 모습은 사라진 듯합니다.

 

1945년 광복 직후 서예가 김충현이 쓴 현판이었으나 1967년 박정희 전 대통령이 쓴 현판을 새로 달았고, 2001년엔 3.1 운동 발상지에 일본군 장교출신이 쓴 현판을 걸 수 없다며 다른 사람의 글씨로 새로 바꾼 현판입니다.

 

 

탑골공원 관람안내

 

관람시간 3~10월 09:00~18:00, 11~2월 09:00~17:00

휴무일 연중무휴

입장료(관람료) 무료
주차장 없음(주변 노상 공영주차장 이용 시 10분에 1,000원)

 

탑골공원 모습

 

예전보다는 적지만 여전히 손병희선생 동상과 팔각정, 3,1 운동기념탑 주변엔 노인들이 군데군데 몰려 있습니다.

바둑판과 장기판을 치우고 술 마시는 유흥모습을 단속해서인지 그런 모습은 볼 수 없고, 그냥 하릴없이 시간을 보내는 모습이 안쓰럽게만 느껴집니다.

 

 

탑골공원이 만들어지기 전 이곳은 고려시대 조계종의 본사가 된 원각사(흥복사)가 있던 곳인데요

세종이 불교종파를 선교양종으로 통합한 뒤, 1457년(세조 3)에 흥복사를 폐한 후 1465년(세조 11)에 다시 지어 원각사라 불렀습니다.


1488년엔 불에 다서 다시 짓고, 1512년(중종 7)에 철거 후 원각사지 십층석탑만 빼고 공터로 남았고 주변에는 민가가 들어섰습니다.
 
탑골공원에는 당시에 지어진 원각사지 10층 석탑(국보 2호)과 원각사지 대원각사비(보물 3호)가 남아 있고요.
독립선언서를 낭독했던 팔각정과 손병희 선생의 동상이 있습니다.

 

3.1 운동 기념탑

 

1919년 3월 1일, 

4~5천명에 이르는 학생들과 시민들이 모여 12시를 알리는 소리와 함께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던 곳인데요.

이곳에서 시작된 만세운동은 전국적으로 퍼져 나갔습니다.

뒷면에는 기미독립선언서가 적혀 있습니다.

 

의암 손병희 선생 동상
 
손병희는 동학(제3대 교조)과 천도교 지도자이자 독립운동가입니다.  
1905년 기해교단의 명칭을 천도교로 바꾸었고, 1919년 민족대표 33인의 대표로 3.1 독입선언을 주도하다가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습니다.
1920년 병보석으로 출감, 1922년 5월 19일에 상춘원에서 옥고 후유증으로 순국했습니다.

 

탑골공원 팔각정

 

팔각정은 1902년(광무 6)에 지은 팔각형 정자로 3.1 운동 당시 독립선언서를 낭독했던 곳인데요.

이곳에도 노인들이 점유하고 있습니다. 

 

젊은이들은 전혀 보이지 않았고, 지나가는 외국인 2명의 일행만 봤습니다.

 

원각사지 대원각사비(보물 제3호)

 

원각사지 대원각사비는 1471년(성종 2)에 세조가 원각사를 창건한 경위를 적은 비석입니다.
세조는 양주 회암사에서 분신한 사리를 보고 감동하여 1465년(세조 11) 흥복사 터에 원각사를 지었다고 합니다.

  
1467년(세조 13)에는 13층 석탑이 완성되자 연등회를 개최하고 낙성식을 거행했고, 원각사지 대원각사비를 세운 것입니다.

 

거북 모양의 받침돌에 연잎을 새겨 몸돌을 세울 자리를 만들었고, 몸돌은 머릿돌인 이수와 한 돌로 만들었습니다.
대원각사비 높이는 494cm이며, 거북은 화강암으로, 몸돌과 머릿돌은 대리석으로 만들었습니다.

 

원각사는 연산군 대에 들어 궁궐에 인접한 민가를 철거하면서 빈 절이 되었고 근대 들어 공원으로 바꾸며 원각사지 10층석탑과 대원각사비만 남아 옛 원각사의 흔적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원각사지 십층석탑(국보 2호)

 

세조가 세운 원각사 터에 남아 있는 높이 12m의 10층 석탑입니다.
1467년에 제작된 석탑으로 600년 역사를 함께하고 있습니다.

 

보존을 위해 유리집을 지어 관리하고 있습니다.

 

'亞' 자 모양의 기단은 세 겹,

아래에는 용과 연꽃같은 무늬를 새겼고, 중간에는 삼장법사와 손오공과 저팔계, 사오정 일행이 인도에서 불법을 구해 오는 과정을 새겼습니다.
위에는 부처님의 전생 설화와 일생을 조각했습니다.

 

노인들만을 위한 공원에서 탈바꿈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탑골공원.

한편으로는 갈 데 없는 노인들을 어디로 가라고 내쫓는 것인지 걱정되는 반면, 시끄럽고 지저분한 공원을 정상으로 돌려놓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는 생각 등이 교차하는 곳이 되었습니다.

 

탑골공원은 1980년대까지만 해도 젊은 사람들이 나들이 장소로, 데이트하기 위해 많이들 찾았다고 합니다.

노인인구가 증가하면서 어느 순간부터 노인들을 위한 공간이 되어 왔는데, 현재의 모습으로는 원래의 모습으로 가기까지는 요원해 보입니다.

그렇다고 노인들 방문을 차단할 수는 없는 일, 참으로 난감하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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