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로구 관철동 89번지(종로 2가)에는 1912년에 세워진 우리나라 최초의 상설영화관인 우미관이 있었던 우미관 터가 있습니다.
우미관은 우리나라에 영화가 들어온 초기에 단성사, 조선극장 등과 경쟁을 펼치던 영화관으로 1912년 12월 일본인 하야시다가 설립했는데요.
우미관의 전신은 1910~1911년에 있었던 황금연예관이었습니다.
당시 단성사는 1907년에 창이나 무용공연을 하던 일반 극장으로 단성사보다 일찍 시작했으나, 판소리와 창극을 주로 공연한 ‘광무대’의 운영자이자 한국영화계의 개척자 박승필(1875~1932)이 단성사를 인수, 1918년부터 상설영화관으로 운영을 시작했습니다.
조선극장은 1922년에 오픈한 영화관이었습니다.
당시 우미관은 2층 벽돌건물로 1,000명 정도 수용할 수 있는 큰 극장이었는데요.
당시는 변사가 설명해 주는 무성영화라서 한글과 일본어로 번갈아 설명하는 것이 번거로워 조선인 전용 영화관으로 시작했습니다.

우미관 터 맞은편은 공평구역 15, 16지구 도시정비형 재개발사업을 하고 있는데요.
대형 오피스와 상업 복합건물 두 동이 17층 규모로 들어서고 있습니다.
내년에 완공 예정으로 종로 2가가 새로운 모습으로 도약할 수 있을 것 같네요.
우미관은 1916년 12월에 미국 유니버설 스튜디오와 특약을 체결하여 조선에서 유니버설 영화를 독점 상영할 수 있는 권리를 얻기도 했습니다.
우미관은 조선인들 사이에서 명소가 되었고, 1,000여석인 극장엔 항상 2,000명이 넘는 관람객으로 가득 찼을 정도라고 합니다.
단성사(1907→1918년 영화 전용관)와 조선극장(1922) 등이 자리를 잡기 전, 1910년대 종로 영화 흥행의 1번지가 바로 우미관이었습니다.
변사(무성영화에서 설명해주는 사람)가 해설하는 무성 단편 수입 상영으로 관객을 모았고, 1920년대에도 개봉관으로서의 역할을 담당했고요.
1928년 한국 최초의 유성영화(소리나는 활동사진) 상영극장이 되면서 무성영화에서 유성영화로 넘어가는 과도기의 극장이기도 했습니다.
당시 이름 있는 조선인 변사 대부분은 우미관 출신이거나 우미관을 거쳐 갔을 만큼 우미관은 그 당시에 유명했던 것입니다.

1920년대 들어 단성사와 조선극장이 급성장하며 3강 구도가 형성되자, 우미관은 오락 지향 레퍼토리 비중을 높여 관객을 붙잡았는데요
하지만 경쟁이 심화되면서 위상이 조금씩 약해졌고, 해방 후에도 계속 운영하다가 전쟁과 화재, 도시 재개발 속에서 점차 재개봉관/2류관으로 성격이 바뀌었습니다.
우미관은 1924년 5월에 건물 전체가 불탔고, 같은 해 12월에 재건했으나 한국전쟁 중 다시 건물이 소실, 1959년 재건되어 화신백화점 옆으로 자리를 옮겨 상영을 재개했습니다.
하지만 이전의 명성을 회복하지 못해 1982년 폐업으로 역사의 막을 내렸습니다.
우미관하면 빠질 수 없는 인물이 김두한이고, 이는 티비에서 야인시대라는 드라마로 알려졌습니다.
우미관은 구마적이 장악하던 것을 김두한이 차지하면서 김두한이 10대 후반에 ‘종로파’의 거점을 삼았던 핵심 무대였습니다.
우미관 앞골목과 뒷골목(관철동 일대)에서 세력 기반을 넓히며 종로 상권(극장, 요릿집, 다방)을 장악했고, 여기서 일본인 주먹과 경성 패들과 세력 다툼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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