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로구 삼일대로에는 서울의 대표적인 악기상가인 낙원상가와 우리나라 최초의 초등학교인 서울 교동초등학교, 흥선대원군의 서자인 운현궁 등이 있습니다.
교동초등학교 정문 앞에서 10여 미터 떨어진 곳에 지석영 선생 집터가 있습니다.
지석영(1855~1935)은 조선 말기와 대한제국 시기의 의사이자 개화기 지식인으로, 우리나라에 종두법을 본격적으로 보급한 인물인데요.
일본 유학을 통해 종두법을 익히고, 귀국 후 백성들에게 천연두 예방 접종을 널리 알렸던 것입니다.
지석영의 셋째 형인 지운영은 김정희 제자이며. 개항기 한국인 최초로 고종의 사진을 촬영했던 사진가이자 사화가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후 종두 규칙을 마련하고 전국에 종두관을 설치하는 등 근대 의학 발전에 크게 기여했음은 물론 국문연구와 한글 보급에도 힘써 근대 교육과 의학, 학문 발전의 기반을 마련한 인물로 평가받습니다.
지석영 선생 집터를 통해 지석영이 누구인지, 종두법에 대해서 정리했습니다.

서울 교동초등학교 앞에 있는 지석영 선생 집터 표지석
바로 앞에 낙원떡집이 있습니다.
낙원떡집은 1910년대부터 사장님이 궁중 나인에게 중 떡 만드는 법을 배워 시작했고, 현재는 4대째 가업을 이어오고 있는 가게라서 유명한데요.
이러한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되기도 했습니다.
창덕궁과 가까운 곳에서 시작된 덕분에 궁중 떡의 맛과 제조 기술을 고스란히 이어받았고, 오랜 시간 동안 한결같은 맛을 유지해 온 것으로 유명해 역대 대통령들을 비롯해 수많은 유명 인사들이 즐겨 찾았던 떡집입니다.
그러다 보니 삼일대로에는 떡집이 몇 군데 있는데, 예전에는 16군데가 넘는 떡 거리가 형성되기도 했던 곳입니다.
지석영 집터 앞에 있는 가게는 아니고 이곳에서 100여 미터 낙원상가 방향으로 내려가면 원조낙원떡집이 100년인 넘은 떡집이라고 합니다.
서울 교동초등학교는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초등 교육 기관인데요.
1894년 '교동소학교'라는 이름으로 설립되어 13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합니다.
이곳은 대한제국의 교육 이념을 바탕으로 근대 교육의 기틀을 마련한 상징적인 장소입니다.
이 유서 깊은 학교 바로 앞에는 지석영 선생의 집터가 남아 있는 것입니다.

지석영은 1855년 한성부에서 태어났고, 아버지의 친구인 박영선에게 한문과 한의학을 배우며 서양 의학에 큰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1876년, 일본 수신사 수행원으로 박영선이 동행해 사양의학의 우두를 통해 종두법을 소개한 책을 가져와 지석영 등 제자들에게 소개했습니다.
1879년 부산에 있던 일본 해군병원에서 우두(소의 마마)를 이용한 종두법을 직접 배웠습니다.
1880년에는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 위생국에서 우두 제조법을 배워서 서울에 종두장을 설립하고 본격적인 종두 접종을 시작했습니다.
종두법은 소의 우두를 인체에 접종하여 천연두를 예방하는 방법으로, 18세기 영국의 에드워드 제너가 개발했는데요.
조선에는 19세기 초 중국을 통해 들어왔지만, 널리 시행되지는 못했습니다.
이를 본격적으로 정착시킨 인물이 지석영이었으며, 그는 종두관 설치와 규칙 제정을 통해 예방접종을 제도화한 것입니다.
종두법은 지금까지 95%의 천연두 예방을 가진 것으로 알려져 있고, 원숭이 두창, 우두를 비롯해 다른 오르토두 바이러스에서 유랴한 질명에 대한 예방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천연두는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은 인명을 앗아간 감염병으로, 우리 조상들은 어마어마한 사망률의 천연두를 신처럼 모시고 추앙의 대상이 될 정도로 마마라는 극존칭어를 붙이기도 했습니다.
1883년(고종 20) 식년시 문과에 을과 6위로 급제하여 1887년 사헌부 장령 등을 역임했으나 각 분야의 실정을 지적하다 5년간 강진 신지도로 유배를 가게 됩니다.
그는 그곳에서도 우두법 보급에 힘썼고, 위생학서이자 예방의학서인 신학신설을 한글로 간행했습니다.
복직 이후 1894년 갑오개혁 때는 개화파 지식인의 일원으로 형조참의를 지냈고, 김홍집에 의해 토포사로 임명되어 동학군을 토벌하기도 했습니다.
이후 동래부사를 지냈고 대한제국 시기에 의학교에 복귀하여 천연두 퇴치에 노력했습니다.
1898년 관립의학교 설립을 청원하여 대한민국 최초의 근대식 의학 교육 기관인 관립의학교를 설립해 초대 교장이 되었고, 재직 8년 동안 36명의 근대식 의사를 배출하는 서양의학을 도입하는데 앞장섰습니다.
관립의학교는 일제강점기에 경성의학전문학교가 되고, 1945년 광복 이후에는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이 된 것입니다.
분당 서울대학교병원에는 지석영 의생명연구소가 있는 이유입니다.

관립의학교를 그만둔 이후에는 한글 보급에 힘을 기울였습니다.
1908년 2월 국문학자 주시경 등과 함께 국문연구소 위원으로 임명되어 한글 표기법을 정립했고, 1909년 자전석요를 간행하여 한자의 해석에 새로운 방향을 제시했습니다.
1910년 8월 한일병합이 이루어진 이후에는 모든 공직에서 물러나 초야에서 여생을 보냈는데요.
1914년 유유당이라는 소아 진료소를 차려 80년의 인생을 마감할 때까지 아이들의 건강을 돌보았습니다.
다만, 경술국치 이후에는 대외 활동이 거의 없이 진료만 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이토 히로부미 추도식에서 추도사를 읽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친일 논란이 불거지기도 했는데요.
아이러니하게도 1906년 을사늑약 체결 직후 자결한 민영환의 추도사를 읽기도 했습니다.
지석영은 단순히 의학 보급에 그치지 않고, 의학교 교관으로 활동하며 후학을 양성했고, 조선 최초의 근대식 의학교 설립에도 관여했습니다.
또한 국문 보급에 힘써 한글 맞춤법 통일을 위한 노력을 기울였으며, 국문연구소 위원으로 활동하기도 했습니다.
일제강점기에는 국권 상실의 아픔을 겪으면서도 의학, 교육, 학문 발전을 위해 헌신하여 근대 지식인의 표상으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지석영 사진과 일대기는 나무위키를 정리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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