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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여행

조선의 외교문서 관장하던 곳, 숭문원 터

by 일상행복 주식회사 2025. 8.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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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관청 중 하나인 숭문원은 왕명에 따라 외교문서를 작성, 번역하고 서적을 출판, 관리하던 기관인데요.
특히 외교와 관련된 문서 작성 및 교린 정책 수행에 중요한 역할을 맡았던 기관입니다.

 

숭문원은 조선 태종 10년(1410)에 처음을 설치했고, 외교문서 작성과 문서 번역, 외국 사신 응대, 서적의 인쇄와 출판을 담당했던 예조 관할의 관청이었습니다.

조선 건국 초기에 있던 문서응봉사가 숭문원으로 개편된 것입니다.

 

숭문원은 처음에는 이곳 양덕방에 있었다가 1445년(세종 25) 이후 경복궁, 경희궁, 창덕궁으로 옮겨 다니다가 1787년(정조 11)에 다시 이곳으로 이전되었고요.

1895년 을미개혁 때 폐지되었습니다.

 

여기에서 양덕방이란 현재 종로 일대를 지칭하는 말로, 한성부의 중부 관할아래 17개의 방이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양덕방인 것입니다.

현재 계동 현대사옥 주차장 자리가 바로 양덕방이라고 이해하면 될 것 같습니다.

 

현대건설 본사가 있는 현대 계동사옥 주차장 서쪽 출구에 숭문원 터가 있고요.

이 일대를 양덕방이라고 부른 것 같습니다.

 

 

숭문원의 주요 업무

 

1) 외교문서 작성 및 번역
명, 청, 일본, 류큐(오키나와), 여진(후금) 등 주변 국가와의 외교문서 작성
한문·몽골어·여진어·일본어 등의 번역 업무 수행

2) 사신 영접 문서 작성
외국 사신이 조선에 왔을 때 주고받는 표문(表文), 서장(書狀) 등을 작성

3) 국왕 교서 정리
왕명이 담긴 문서, 국가 중요 기록 등을 정제된 문체로 정리

4) 출판 및 도서 간행
실록, 외교문서집, 서적 등을 간행하는 데 관여 (활자 인쇄 기술도 일부 관리)

 

숭문원에는 1408년(태종 8)에는 지사(정3품)와 첨지사(종3품) 각 1명, 검도관(4품), 교리관(5품), 수찬관(6품) 각 2명, 서기 4명을 두었다고 하고요.

1411년 문서응봉사를 승문원으로 개편하면서부터는 판사(정3품), 지사(종3품) 각 1명, 첨지사(종4품), 교리(종5품), 부교리(정6품), 정자(종7품), 부정자(정8품) 각 2명을 두었습니다.

이후에도 직제가 바뀌며 변화를 거듭했습니다.

 

 

숭문원의 역사적인 의미는 다음과 같이 정리해 볼 수 있겠습니다.

 

1) 조선의 외교 문화를 집약한 기관으로, 단순한 문서 담당이 아닌 문화, 외교 정책의 일선 기관이었고, 

2) 조선이 명나라와 청나라 등 중화문명과 조심스러운 외교를 추구하던 모습이 이 숭문원을 통해 구체화되었으며,
3) 문치주의를 중시한 조선 사회에서 숭문원은 문장의 권위와 국격을 상징하는 기관이었습니다.

 


숭문원에서 작성된 외교문서로는 '승정원일기, 조선왕조실록, 비변사등록' 등에도 자주 인용되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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