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리 동구릉은 서울 동쪽에 있는 9기의 조선왕릉(15개의 봉분)이라는 의미로 7명의 왕과 10명의 왕비가 이곳에 잠들어 있어 조선왕릉이 제일 많은 곳입니다.
아울러 원이나 묘가 아닌 왕릉만 있는 곳이 바로 동구릉이기도 합니다.
1408년(태종 8) 조선을 건국한 태조의 건원릉이 처음 조성되었고, 이후 문종의 현릉, 선조의 목릉, 현종의 숭릉, 장렬왕후의 휘릉, 단의왕후의 혜릉, 영조의 원릉, 헌종의 경릉이 차례로 조성되었습니다.
당시 능의 개수에 따라 동오릉, 동칠릉으로 불리다가, 1855년(철종 6) 추촌 문조(효령세자)의 수릉이 이곳에 옮겨지면서 동구릉이 완성되었습니다.
[조선왕릉] 조선왕릉이 가장 많은 구리 동구릉(입장료 및 주차장 정보)
오늘은 추존 문조(효명세자)와 신정왕후가 잠들어 있는 동구릉 수릉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수릉은 동구릉에서 가장 먼저 만나는 조선왕릉으로 재실에서 직진하면 수릉입니다.
수릉으로 가는 길은 아름드리 소나무가 그늘을 만들어 주고 있습니다.
수릉은 추존 문조(1809~1830)와 신정왕후의 합장릉입니다.

수릉 일대 모습
추존 문조(1809~1830, 효명세자)는 제23대 순조와 순원왕후의 아들로 훗날 헌종의 아버지입니다.
1812년(순조 12) 왕세자로 책봉되었고, 19세에 순조를 대신해 대리청정을 시작했으며, 안동 김씨 세력을 건제하기 위해 다양한 인재를 등용했고 왕실의 권위를 높였습니다.
조선을 개혁하기 위한 그의 꿈은 대리청정 3년 만인 22세에 삶을 마감하면서 수포로 돌아갔습니다.
역사는 그가 오래 살았다면 조선의 근대사가 변화했을 것이며, 그의 요절은 조선 역사상 가장 아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시효를 효명세자(효성스럽고 영민했다는 의미)라 했고, 아들 헌종이 즉위한 후 익종으로 추존되었다가 대한제국 선포 후 1899년(광무 3)에 고종의 양아버지 자격으로 문조익황제로 추존되었습니다.

동구릉 수릉 홍살문
홍살문은 능이나 원, 묘, 궁 등 정면에 세우는 붉은 칠을 한 나무 문으로, 지붕 없이 화살모양의 나무를 나란히 세웠고, 그 중간에 태극문양이 그려져 있습니다.
홍살문이 있다는 것은 이곳이 신성한 곳이니 격식이나 예절을 갖추라는 의미를 나타냅니다.
신정왕후(1808~1890) 조씨는 풍은부원군 조만영의 딸로 1819년 문조와 혼인을 하며 세자빈으로 책봉되었는데, 일찍 요절한 남편과 달리 82세까지 장수했습니다.
순조가 1834년 승하하자 아들인 헌종이 왕위에 올랐으나 후사없이 요절했고, 이후 철종 역시 후사없이 승하했습니다.
왕실의 최고 어른이 된 신정왕후는 안동 김씨 세력을 따돌리고 흥선군과 손을 잡아 그의 둘째아들인 이명복(고종)을 수양아들로 삼아 왕위에 올렸습니다.
그리고 고종 즉위 이후 수렴청정을 하며 흥선대원군이 개혁 정치를 펼칠 수 있도록 든든한 발판을 마련해 주었습니다.

조선왕릉에는 왼쪽에 수라청이, 오른쪽에 수복방이 있는데, 수릉에서는 수라청만 복원되어 있습니다.
수라청은 재실에서 준비한 제례음식을 데우고 진설하는 곳이고, 수복방은 능원을 지키는 사람이 머무는 공간입니다.

수릉의 정자각
정자각은 제향을 올릴 때 왕의 신주를 모시던 곳으로, 위에서 봤을 때 丁자처럼 생겼다고 해서 붙인 이름입니다.
제향음식을 차려놓는 정전과 제례를 올리는 배위청이 합쳐진 전각입니다.

수릉은 추존 문조와 신정왕후의 합장릉으로 조성되어 있는데요.
보통 정자각에서 능을 바라봤을 때, 왼쪽에 왕을, 오른쪽에 왕비를 모시는데 수릉은 왕을 오른쪽에, 반대로 모셨다고 합니다.
이는 세상을 떠났을 때의 신분, 즉 문조는 왕세자, 신정왕후는 대왕대비라는 신분 차이 때문으로 보고 있습니다.
1830년 효명세자의 무덤인 연경묘로 현재의 의릉(경종) 근처에 처음 조성되었고, 1834년에 익종으로 추존하면서 수릉으로 격상되었습니다.
1830년 효명세자가 세상을 떠나자, 당시 양주 의릉(경종의 능, 현재 서울 의릉) 왼쪽 언덕에 연경묘로 조성되었습니다.
그리고 1834년에 익종으로 추존하면서 수릉으로 격상되었습니다.

1846년(헌종 12)에 풍수지리상 좋지 않다는 주장이 제기되어 태종의 헌릉이 있는 양주 대모산(현재의 내곡동 헌인릉 일대)으로 1차 천릉했습니다.
이후 1855년(철종 6) 신정왕후(조대비)가 서초구의 능 자리 역시 풍수적으로 불길하다며 다시 이장을 요청했고, 이때 현재의 구리 동구릉으로 이장되며 2차 천릉이 이루어졌습니다.
이후 1890년 신정왕후가 세상을 떠나자, 이곳 수릉에 합장되면서 현재 우리가 볼 수 있는 동구릉 수릉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장명등, 문석인은 1830년, 무석인은 1846년, 호석과 양석, 석마 두 쌍 중 한쌍은 1830년, 다른 한쌍은 1846년에 각각 제작되는 등 석물들은 시대가 제각각입니다.
수릉은 세자묘로 조성되어 봉릉과 두 차례의 천릉, 신정왕후의 합장까지 변화를 담고 있는데, 이는 19세기 왕릉 천릉의 중요한 사례로 보고 있습니다.
아울러 수릉의 문석인은 동구릉의 왕릉 중 유일하게 금관조복 차림을 하고 있습니다.

수릉 정자각에서 바라본 진입로 모습

수릉 정자각 제향공간

수릉의 기신제는 매년 6월 25일입니다.

수릉의 비각


수릉 비문
왼쪽에 수릉 추존 익종대왕 비문(1890)이, 오른쪽에 수릉 추존 문조익황제, 신정익황후 비문(1902)이 각각 있습니다.
이 두 표석은 모두 고종의 글씨라고 합니다.
왕릉의 비각에는 왕과 왕비의 생애, 시호, 업적, 능의 조성 기록 등이 새겨진 비문이 보관되어 있습니다.
대부분 한문으로 기록되었으며, 조선 왕실의 권위와 유교적 세계관을 보여주는 중요한 문화유산입니다.
천재적인 재능을 펼치지 못하고 꺾인 남편과, 그 남편의 못다 이룬 꿈을 가슴에 품고 조선 말기의 거센 풍랑을 홀로 버텨낸 아내.
동구릉의 수릉은 그 애틋하고도 파란만장했던 두 사람의 영혼이 비로소 안식을 찾은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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