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리 동구릉은 서울 동쪽에 있는 9기의 조선왕릉(15개의 봉분)이라는 의미로 7명의 왕과 10명의 왕비가 이곳에 잠들어 있어 조선왕릉이 제일 많은 곳입니다.
아울러 원이나 묘가 아닌 왕릉만 있는 곳이 바로 동구릉이기도 합니다.
1408년(태종 8) 조선을 건국한 태조의 건원릉이 처음 조성되었고, 이후 문종의 현릉, 선조의 목릉, 현종의 숭릉, 장렬왕후의 휘릉, 단의왕후의 혜릉, 영조의 원릉, 헌종의 경릉이 차례로 조성되었습니다.
당시 능의 개수에 따라 동오릉, 동칠릉으로 불리다가, 1855년(철종 6) 추촌 문조(효령세자)의 수릉이 이곳에 옮겨지면서 동구릉이 완성되었습니다.
[조선왕릉] 조선왕릉이 가장 많은 구리 동구릉(입장료 및 주차장 정보)
오늘은 조선 5대 임금인 문종과 그의 비인 현덕왕후가 잠들어 있는 동구릉 현릉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동구릉 현릉은 태조 이성계의 무덤인 건원릉 가기 전에 자리하고 있는데요.
추존 문조의 무덤인 수릉 뒤에 자리합니다.
조선 5대 임금인 문종과 현덕왕후 권씨의 능인데요.
천만 관객을 달성한 왕과 사는 남자의 비운의 왕인 단종의 아버지와 어머니의 묘입니다.

동구릉 현릉 홍살문
홍살문은 능이나 원, 묘, 궁 등 정면에 세우는 붉은 칠을 한 나무 문으로, 지붕 없이 화살모양의 나무를 나란히 세웠고, 그 중간에 태극문양이 그려져 있습니다.
홍살문이 있다는 것은 이곳이 신성한 곳이니 격식이나 예절을 갖추라는 의미를 나타냅니다.
문종(1414~1452, 재위 1450~1452)은 세종과 소헌왕후의 아들로 8세에 왕세자로 책봉된 후 무려 29년간 세종을 도와 실무정치를 익혔으나, 왕위에 오른지 얼마 되지 않아 지병으로 어린 단종을 두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역사에서 문종은 일찍 죽고 병약했던 왕으로 기억되는데, 실상은 29년 동안 세자로 있으면서 아버지 세종을 도와 눈부신 업적을 달성한 천재 군주였다고 합니다.
문종의 아이디어로 개발한 측우기, 비밀병기 화차를 개발해 국방력을 끌어올렸고, 부모님이 돌아가시자 3년 상을 치르며 몸을 돌보지 않을 만큼 효심이 깊었습니다.


향로와 어로는 직선이 아닌 한 번 꺾어져 정자각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는 기존 자연을 그대로 두기 위한 조치로 해석됩니다.
현덕왕후 권씨(1418~1441)는 화산부원군 권전의 딸로 1431년(세종 13) 왕세자였던 문종의 후궁이 되었고, 1437년(세종 19)에 왕세자빈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원손인 단종을 낳고 사흘 만에 세상을 떠났고, 문종이 왕위에 오르지 왕후로 추존되었습니다.
문종은 세자 시절 두 번의 혼인을 했으나 품행 문제로 연이어 폐출되는 일을 겪었고, 후궁 출신의 현덕왕후 권씨를 세 번째 부인으로 받아들인 것입니다.
성품이 온화하고 총명하여 문종의 사랑을 독차지했으나 단종을 낳고 세상을 떠나고 만 것이네요.
문종은 현덕왕후가 세상을 떠나자 더 이상 왕비를 들이지 않다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왼쪽에는 수라청이, 오른쪽엔 수복방이 있습니다.
수라청은 재실에서 준비한 제례음식을 데우고 진설하는 곳이고, 수복방은 능원을 지키는 사람이 머무는 공간입니다.
현덕왕후의 무덤은 경기도 안산에 조성되었다가, 문종이 즉위 후 능으로 높여 소릉이라 불렀습니다.
이후 세조 대에 현덕왕후가 폐위되면서 다른 곳으로 옮겨졌다가 1513년(중종 8)에 다시 왕후로 복위되어 능을 문종 능 동쪽 언덕으로 옮긴 것입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문종의 능은 단독으로 있었습니다.
야사에는 세조가 조카인 단종을 쫓아내고 왕위에 올라 급기야 죽이기까지 하자 꿈에 헌덕왕후가 나타나 세조의 얼굴에 침을 뱉자 세조의 아들인 의경세자가 죽고 세조는 등창(피부병)을 얻어 소생했다는 내용이 아직까지 전해 내려오고 있습니다.

문종과 현덕왕후가 묻혀 있는 현릉은 두 언덕에 자리한 동원이강릉 형식입니다.
좌측이 문종의 무덤이고, 우측이 현덕왕후의 무덤입니다.

우측 현덕왕후의 무덤

좌측 문종의 무덤
문종은 국방과 과학에 관심이 많았던 만큼, 그의 능을 지키는 문인석과 무인석 등 석물들의 조각이 매우 정교하고 당당한 풍채를 자랑한다고 합니다.
세종 대의 화려하고 완숙한 조선 초기 석조 미술의 극치를 보여준다네요.

현릉의 정자각
정자각은 제향을 올릴 때 왕의 신주를 모시던 곳으로, 위에서 봤을 때 丁자처럼 생겼다고 해서 붙인 이름입니다.
제향음식을 차려놓는 정전과 제례를 올리는 배위청이 합쳐진 전각입니다.


정자각에서 바라본 현릉 진입로

현릉 정자각 제향공간

현릉의 기신제는 매년 6월 10일입니다.

현릉의 비각

현릉 비문
왕릉의 비각에는 왕과 왕비의 생애, 시호, 업적, 능의 조성 기록 등이 새겨진 비문이 보관되어 있습니다.
대부분 한문으로 기록되었으며, 조선 왕실의 권위와 유교적 세계관을 보여주는 중요한 문화유산입니다.
조선을 위해 평생을 바쳤던 천재 임금 문종, 그리고 아들을 낳고 일찍 떠나야 했던 현덕왕후.
살아서는 짧은 행복 뒤에 긴 이별을 겪어야 했고, 저승에서는 아들이었던 단종을 폐위시키고 사사까지 시킨 동생 세조의 만행을 지켜봐야 했던 사람이었지만, 수백 년이 흐른 지금은 구리 동구릉의 푸른 숲 속에서 나란히 자리해 서로를 지켜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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