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제국 말기, 일제의 침략에 맞서 총칼 대신 '교육'과 '실력'을 강조하며 우리 민족의 실력을 양성하고 국권을 회복하고자 분투했던 애국계몽단체인 서북학회(西北學會)가 있었습니다.
1908년 1월에 평안도와 황해도 출신의 지식인이 중심이 된 '서우학회(1906년)'와 함경도 중심의 '한북흥학회(1906년)'가 통합(평안도, 황해도, 함경도)하여 결성되었는데요.
안창호, 박은식, 이동휘, 이갑 등 항일 독립운동사의 거목들이 주도했습니다.
서북학회는 다음과 같은 주요 활동을 했습니다.
중등 교육기관인 오성학교를 설립하여 인재를 양성했으며, 산하에 수십 개의 분교를 둘 정도로 교육 열기가 뜨거웠습니다.
'서북학회월보'를 발간해 민중들에게 근대적 지식과 애국심을 전파했고,
비밀리에 구국 비밀결사인 신민회와 긴밀히 연결되어 독립 전쟁을 준비하는 대중 조직 역할을 했음은 물론
실력을 길러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국민의식을 깨우는 데 앞장섰습니다.

서북학회 터 맞은 편에 있는 우리나라 최초의 초등학교인 서울 교동초등학교
우리나라 최초의 초등학교, 서울 교동초등학교(교동소학교)
서북학회 회관은 1908년 종로구 낙원동 282번지에 르네상스 양식의 3층 벽돌 건물(연건평 395평)로 서북학회가 들어섰습니다.
당시에는 보기 드문 현대식 건축물이라 장안의 화제가 되었다고 합니다.
당시 종로 2가에 있던 한성전기회사(현 한국전력공사) 사옥을 모방하여 반지하 구조의 지상 2층 규모로 지었는데, 3층 전면에 돌출된 돔 지붕의 중앙탑을 올린 점이 특징입니다.
당시 서울에 총사무소를 두고 31개 지역에 지회를 설치하고 69개 지역에 지교를 두었으며, 회원은 2,300여명에 이른 것으로 추산됩니다.
하지만 서북학회는 1910년 경술국치 이후 일제의 탄압으로 강제 해산되고 말았습니다.
1918년 조선총독부는 서북학회에서 운영하던 서북협성학교마저 끝내 문을 닫게 했습니다.

서북학회 회관은 현재 건국대학교 내에 박물관으로 운영 중입니다.
과거로 더 거슬러 올라가면 고려대학교의 전신인 보성전문학교와 서북협성학교(평안도와 황해도 출신이 설립)도 한때 낙원동 교사로 불리며 이 건물에서 배우고 가르쳤다고 합니다.
해방 후 서북출신의 서북인을 중심으로 세워진 건국대학교, 단국대학교, 국민대학교, 한양대학교, 경희대학교 등이 있어 이 건물에서 태동하거나 초기 교사로 사용했는데요.
그래서 서북학회를 대학교육의 산실이라 불리고 있습니다.

서울 교동초등학교 맞은편에 있는 서북학회 터 표지석
1908년 지어진 서북학회 회관은 1910년에 서북학회가 강제 해산되면서 건물의 주인도 바뀌게 되었습니다.
이후 '협성실업학교' 등으로 사용되기도 했으며, 한때는 민간에 넘어가 상점이나 사무실 등으로 임대되는 등 민족의 수난과 함께 건물도 부침을 겪었습니다.
이후 보성전문학교(고려대학교)가 건물을 사용했고, 많은 학생들이 3.1 운동에 참여하여 옥에 갇히거나 학교에서 쫓겨났습니다.
1946년 건국대 설립자인 상허 유창석 박가가 이곳에서 조선정치학관을 설립한 것이 건국대의 전신이 되었습니다.
1947년 단국대학교가 이곳에서 개교했습니다.
1946년 국민대학교 역시 이 건물에서 임시 교사로 사용하며 역사가 시작되었습니다.
한양대학교(덩시 동양공업중학교) 등 요러 교육기관이 이 건물을 거쳐가며 성장의 발판을 마련하게 된 것입니다.
1970년대 들어 재개발 사업으로 건물이 헐릴 위기에 있었는데요.
역사적 가치를 아깝게 여긴 건국대학교에서 벽돌 하나하나에 번호를 매기며 통째로 해체하여 보관했다가 1985년 서울캠퍼스에 복원한 것입니다.
지금은 등록문화제 제53호로 등록되었고, 건국대학교 박물관, 상허기념전시관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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