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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여행

경희궁의 정문, 경희궁 흥화문 터

by 일상행복 주식회사 2025. 12.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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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500년 역사의 수도인 한양에는 5개의 궁궐이 있고, 각각의 궁궐에는 출입문인 정문이 하나씩 있죠.

 

한양(서울)의 5대 궁궐과 정문 이름은 이렇게 정리할 수 있어요.


조선의 법궁이었던 경복궁의 광화문(빛으로 세상을 교화한다)

가장 오랜 세월 궁궐로 사용했던 창덕궁의 돈화문(도탑고 두터운 덕으로 백성을 교화하는 문)

일제강점기에 유린을 당했던 창경궁의 홍화문(교화를 널리 펴는 문)

대한제국의 궁궐이었던 덕수궁(경운궁)의 대한문(대한제국의 큰 문)

 유일하게 조선시대 정궁이 아닌 별궁이었던 경희궁의 흥화문(교화를 일으켜 번성하게 하는 문)

 

이중에서 경희궁은 별궁으로만 사용했던 궁궐이고, 조선시대 정궁과 별궁 중 유일하게 원형이 거의 남아 있지 않은 궁궐이기도 합니다.

그러다 보니 복원을 하면서도 정문인 흥화문의 위치가 크게 달라진 곳이기도 하죠.

 

경희궁 흥화문 터가 있는 구세군회관

 

흥화문은 경희궁의 정문 이름으로 경희궁(창건 당시 경덕궁) 창건과 함께 광해군 10년(1618)에 세워졌는데요.

당시 흥화문은 현재의 흥화문과 280m나 떨어져 있는 구세군회관 자리에서 동쪽을 바라보고 있었다고 합니다. 

 

경희궁 흥화문은 정면 3칸, 측면 2칸, 건평 약 88㎡의 우진각지붕(네 추녀마루가 동마루에 몰려 붙은 지붕) 건물로 단층입니다.

다른 궁궐의 정문이 2층으로 지어진 것과 달리 흥화문은 1층으로 지어졌는데, 이는 경희궁이 이궁이었기 때문입니다.

 

 

경희궁은 창덕궁과 창경궁(동궐)에 대응하는 서쪽 궁궐(서궐)로, 왕이 평소나 비상시에 옮겨 머무는 이궁(별궁) 역할을 했는데요.
인조부터 철종까지 약 10대에 걸친 왕들이 이곳에서 정사를 보거나 거처했을 만큼 비중이 컸고, 전성기에는 정전과 침전, 동궁, 별당 등 100동이 넘는 전각을 가진 큰 궁궐이었다고 합니다.

정사를 보는 숭정전, 편전인 자정전, 침전인 융복전과 회상전 등이 있었고, 경운궁(덕수궁)과는 홍교(무지개다리)로 이어져 왕이 오갈 수 있었습니다.

19세기에 들어 순조 때(1829) 큰 화재로 많은 전각이 소실되었고, 중건되었으나 궁궐 전체 위상은 예전만 못해졌습니다.
고종 때 흥선대원군이 경복궁 중건을 추진하면서, 부족한 자재를 충당하기 위해 경희궁의 건물 상당 부분을 헐어다 쓰기도 했습니다.

여기에 일제강점기에는 궁터 대부분이 수탈되어 일본인 학교인 경성중학교(나중의 서울고등학교)가 들어서고, 궁궐 건물들은 흩어지거나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정전 숭정전은 동국대학교로 옮겨져 불교 법당으로 쓰였고, 정문 흥화문은 남산의 경성중학교 정문, 또 이후에는 이토 히로부미를 위한 사찰인 박문사 정문으로, 해방 후 호텔신라 정문으로 사용되었다가 1980년대에야 다시 현재의 자리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1990년대에 일부 발굴조사와 복원을 진행해 정문인 흥화문, 금천교(근총교), 숭정전 등 일부 전각과 담장, 행각 등을 복원했고, 궁터 일부에는 서울역사박물관과 서울시립미술관 경희궁 분관 등이 들어서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의 경희궁은 예전처럼 거대한 궁은 아닌 상태입니다.


사라진 조선 궁궐의 흔적, 경희궁

 

 

원래의 흥화문 자리는 종로를 향하게 동향을 보고 배치되어 있었으나, 현재 그 위치는 찾기 힘들다고 하며 단순히 구세군빌딩 그 어딘가가 흥화문 터였음을 추측한다고 합니다.

 

흥화문 터 앞에 있는 서울역사박물관

 

서울역사박물관은 종로구 옛 경희궁터에 위치한 시립 박물관으로, 서울의 역사와 전통문화를 소개하기 위해 2002년에 개관했는데요.
서울은 과거 백제와 조선의 수도였던 곳이고, 현재는 대한민국의 수도라 한반도 역사의 중심에 있는 도시입니다.
그런 수도 서울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곳이 바로 서울역사박물관입니다.


서울의 역사를 한눈에, 서울역사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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