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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경기도 여행

조선왕족 이근의 고택인 염근당, 연천 조선왕가

by 일상행복 주식회사 2025. 10.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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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천 재인폭포를 구경한 후 나오다가 발견한 연천 조선왕가.

 

연천 가볼만한 곳, 연천 재인폭포

 

연천의 조선왕가는 말 그대로 ‘왕가가 살던 집’이라는 의미로 염근당이라는 한옥으로, 지금은 한옥스테이 겸 문화공간으로 운영하고 있는 곳인데요.

조선왕가 염근당은 고종황제의 영손으로 조선조 역대 왕의 종묘제례를 관장했던 황족 이근의 고택이었다고 합니다.

1807년 만들어졌고, 1935년에 99칸으로 중수된 조선왕실가의 전통한옥이었던 것입니다.

 

서울 성균관대 인근, 명륜동에 있던 염근당은인근지역 개발로 철거 위기에 놓이자 소유주가 해체, 이건하여 연천에 조선왕가로 재건한 것입니다.

지난 2008년 6월, 이곳 연천군 한탄강 변(연천읍 고문리)으로 트럭 300여대 분량으로 이전했고, 기와와 대들보, 서까래, 기둥, 주춧돌, 기단석, 토방돌 등을 활용해 2010년 9월에 복원한 것입니다.

 

같이 이전했던 후원의 자은정은 명륜동에 있었을 당시 박정희 전 대통령이 머물렀던 정자였고, 회덕당박정희 전 대통령이 머물렀던 고택이기도 합니다.

 

연천 재인폭포에서 나오다가 조선왕가라는 안내 표지를 보고 잠시 들렀는데요.

한양에 있어야 할 조선왕가가 이렇게 먼 연천에 있는지 궁금해졌습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한옥스테이 이용자들만 출입할 수 있고 비투숙객들은 내부 출입이 제한되어 있어 밖에서 사진만 찍고 왔습니다.

 

명륜동에 있던 염근당과 자운정, 회덕당은 왜 연천까지 갔을까?

 

종묘 등 조선왕실에 대한 제사는 왕가의 제사였기에 왕족들에 의해 행해졌습니다.

1807년 창덕궁 뒤편에 지어진 염근당에도 종묘제례를 관장하는 왕족들이 살고 있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일본제국에 의해 조선왕실의 명맥은 끊어지고, 왕실의 마지막 종손이 세상을 떠나자 염근당은 철거가 결정됩니다.

위기에 처한 염근당 철거를 막아선 사람은 남권희 박사.

 

자재를 털어 염근당을 매입했고, 3년의 작업 끝에 연천으로 옮기게 된 것인데요.

1980년대 후반부터 한탄강 협곡과 재인폭포 일대를 명당으로 눈여겨보며 터를 마련해 두었다고 합니다.

대형 한옥을 온전히 복원해 운영하려면 넓은 대지(3,000평)와 자연, 경관, 관광 인프라가 유리한 연천이 적합하다고 판단했다고 합니다.

 

실제 이건에는 해체만 5개월, 전체 중건 하는 데에만 27개월이 걸렸고, 연천 현문로 일대에 본채 염근당과 별채(자은정/사반정 등)를 배치해 숙박체험이 가능한 한옥 스테이로 문을 열었습니다.

 

염근당은 이건 하면서 상량에서 붉은 비단에 싸인 상량문과 금 셋, 은 다섯, 동 일곱 덩어리 등이 함께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상량문은 홍문관 대제학을 지낸 무정 정만조 선생이 짓고, 당대의 명필 농천 이병희 선생이 글씨를 썼는데요,

고종의 손자 이근으로 확인되어 ‘조선왕가’라는 이름을 쓰게 됐다고 합니다.

염근당의 대들보는 수령이 무려 600년이나 된다네요.

 

염근당은 명륜동 3가 51번지에 1807년 건립, 1935년 중수된 서울의 명가였고, 1970년대에는 기업 귀빈 접대 공간으로도 활용되었습니다.

 

담장 너머로 본 조선왕가 모습

 

조선왕가 전통한옥체험시설에서는 계절별 전통음악회, 연잎밥만들기, 약선요리, 한방훈육테라피, 전통한옥숙박체험 등 고품격 체험을 즐길 수 있다고 합니다.

 

연근당 객실과  전각문객실, 사반정객실 등이 있는 공간 모습

 

 

연천군 관광 안내 표지판을 보고 왔는데, 정작 들어가지는 못하고 바깥에서만 잠시 보고 왔는데요.

구경하지도 못하는 공간을 굳이 관광지 안내까지 할 필요는 없어 보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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