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안읍성, 낙민관 낙안읍성 자료전시관
낙안읍성은 조선시대 낙안고을의 진산인 금전산을 배경으로 평야에 쌓은 평지 읍성인데요.
일반적으로 다른 읍성들이 평지와 산을 이어 쌓은 평산성과는 다른 읍성입니다.
조선 태조 6년(1397)에 낙안 절제사 김빈길이 흙으로 쌓았고, 1424년(세종 6)에 토성을 석축성으로 고치면서 지금의 낙안읍성이 되었습니다.
정유재란 당시에는 순천 왜성에 주둔하고 있던 왜적들에 의해 파괴되었고, 1628년(인조 6) 무렵에 낙안군수로 있던 임경업에 의해 복구되었습니다.
낙안읍성 안의 마을은 조선시대부터 전해 내려오는 전통적인 면모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 우리나라의 민속을 살피는 데 중요한 가치를 가지고 있어 지금은 옛 전통가옥을 보존하며 관광지로서 인기를 끌고 있는 곳입니다.
순천 낙안읍성민속마을 풍경 및 낙안읍성 입장료와 주차장 정보
낙안읍성을 구경하다가 낙안읍성 홍보관이자 민속자료 전시관인 낙민관 자료전시관을 관람했습니다.
낙안읍성 낙민관 자료전시관은 낙안읍성 서북쪽 끄트머리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순천 낙안읍성의 역사와 문화를 알리기 위해 예전의 낙안면사무소 건물을 활용하여 1997년에 개관한 곳입니다.
낙안읍성 입장료를 내고 들어 왔으면 무료로 관람할 수 있습니다.
낙안읍성 자료전시관은 3동의 건물로 구성되어 있는데, 2동은 역사문화관과 민속관으로 활용하고, 1동은 낙민관입니다.
역사문화관은 153.45㎡로 낙안의 역사적 배경 및 낙안과 관련된 문헌, 선조들이 사용하였던 생활용품을 전시하고 있고, 역사문화관은 낙안읍성 축소 모형, 낙안읍성 대형 사진, 낙안군 지도, 갑옷과 투구, 임경업(1594~1646) 장군 추모제 1실, 생활용품 약 200여 점 등이 있습니다.
낙안읍성의 역사
순천시 낙안면 동내리, 서내리, 남내리 일대의 낙안분지에 위치한 평지성으로 조선시대에는 읍 소재지라 읍성이라 불렀습니다.
백제시대부터 성곽을 쌓아 파지성이라 불렀고, 조려 후기와 조선 초기에 왜구가 자주 침입하여 1397년(태조 6)에 절제사였던 김빈길이 흙으로 다시 성곽을 쌓았습니다.
성벽의 길이 1,406m, 높이 3~5m이며, 면적은 223,108㎡, 부속 시설물로는 성문 3개, 옹성 3개, 치 4개, 해자와 객사 및 동헌 등의 건물을 갖추고 있습니다.
관청 건물로는 객사, 빙허루, 쌍청루, 향교, 아사, 향사당, 훈련청, 사창, 군기고, 석교 등이 있었습니다.
현재 남아있는 유적으로는 동헌과 객사, 임경업 장군의 비각, 중요 민속가옥 9동, 노거수 15주 등이 있으며, 1983년 국가 사적 302호로 지정되어 관리되고 있습니다.
낙안의 지형
북으로는 광주 무등산에서 뻗어 내려온 진산인 금전산(667.9m)이, 동쪽으로는 오봉산(592m)이, 서쪽으로는 백이산(584m)이, 남쪽엔 제석산(563m)이 있습니다.
금전산 동쪽에 위치한 불재로부터 흘러 들어온 물이 동쪽 들을 적시고, 금전산 서쪽 오공재로부터 흘러들어온 하천이 서쪽을 지나 옥산 앞바다에서 만나 바다로 흘러들어 갑니다.
이러한 지형으로 땅이 기름지고 기후가 온화하여 농작물이 잘 자라 풍요로운 고장입니다.
그래서 역사상 왜구들이 이곳의 곡식을 노려 침범하는 일이 자주 일어났고, 그때 쌓은 성이 낙안읍성입니다.
낙안의 연표
임경업 군수 추모제 모습
임경업(1594~1646)은 조선 중기 이괄의 난을 진압하면서 무관으로 두각을 나타냈고, 청북방어사로 백마산성과 의주성을 수축했으며, 조선을 대표하는 명장으로 백성의 신망을 받았고 명, 청군에도 명성이 높았습니다.
하지만, 청북방어사 겸 영변부사로 있으면서 명나라로부터 총병이라는 벼슬을 받고, 교역을 하면서 지나친 이익을 추구했다는 모함으로 파직되었습니다.
청나라(후금)가 병자호란을 일으키며 조선을 항복시키는 와중에 친명배청파 무장으로 살았으며, 전쟁이 끝나고 청나라 지원에 동의하여 명나라와의 전투에 참여했으나 회피하였고, 이런 사실이 알려지자 청나라는 조선에 압박하여 임경업을 체포하여 심양으로 압송을 요구했고 압송도중 탈출했다가 잡혔습니다.
인조의 요청으로 조선으로 압송되어 형틀에서 장살 되었다고 합니다.
1626년 전라도 낙안군수를 지내며 선정을 펼쳤고, 이때 폐허가 된 낙안읍성을 다시 쌓은 사람이 임경업 장군인 것입니다.
낙안의 인물
성곽
우리나라에는 산성과 토성 등 수많은 성곽이 남아 있고 기능에 따라 도성(왕궁을 지키기 위한 성), 장성(국경에 쌓은 성), 산성, 읍성, 나성, 옹성 등 여러가지 형태가 있습니다.
낙안읍성은 서산의 해미읍성과 함께 조선시대 평지읍성으로 유명한 곳입니다.
낙안읍성의 구조
조선시대 읍성의 건물배치는 일반적으로 성곽 북쪽에 동헌을 두고, 남문 안쪽에 시장을, 중앙에 관아를 설치했는데요.
그러나 낙안읍성은 객사는 성안 북쪽에, 동헌은 액사의 서쪽에 있는데, 이는 보통 남문을 주요 문으로 사용한 반면 낙안읍성은 동문을 주요 문으로 사용했기 때문입니다.
관아의 감옥시설 역시 관아 옆 모퉁이에 있는 것과 달리 낙안읍성은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낙안의 오늘
구한말 읍내에는 368호가 살았으나 지금은 108가구 정도만 있다고 하는데요.
그것도 5~6대에 이어져 살고 있는 가구는 서너 집에 불과할 정도라 토박이라는 토착친족 집단이 없습니다.
낙안읍성 내 마을엔 동내, 서내, 남내로 공간상 구분은 없으나 주민들은 상당히 리로 구분하는 경향이 있고 행사 역시 리 단위로 하는 편이라고 합니다.
1983년 마을이 민속톤으로 지정되면서 행정관서가 모두 성밖으로 이전했고, 지금은 성내 건축물 복원작업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낙안읍성 축소모형
낙안지역의 주요 문화재
12만년 전에 살았던 구석기 유적이 출토되고 있습니다.
청동기시대의 유적으로 주거지와 고인돌이 발견되었습니다.
낙안읍성 자료전시관, 민속관
민속관은 낙안 지방에서 행하여 오던 각종 민속놀이와 통과 의례, 음식 문화를 조형물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사명 덕석기 1실, 통과 의례, 출생, 혼례, 상례, 제례 각 1실, 솟대 세우기 1실, 풍물 약 20여 점, 음식 차림 약 90여 점 등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아울러 낙민관은 홍보 영상을 상영할 수 있는 시설과 관람하거나 60명 이내 인원이 회의하거나 강의를 들을 수 있는 공간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낙안의 생업
옛날 농사지을 때 사용하던 도구들
태어나서 돌이 지나고, 혼례를 치르며, 죽은 후 제례까지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낙안의 계절별 밥상
낙안의 민속놀이
큰줄다리기
낙안의 식생활, 장 담그기, 향토음식 등
사명 덕석기 놀이
낙안의 놀이문화
낙안읍성 자료전시관은 낙안읍성을 둘러보면서 과거 조선시대 낙안에서의 생활상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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