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여수밤바다를 감상하기 위해 여수해양공원 일대를 산책하다가 도착한 곳은 여수낭만포차거리에 있는 하멜전시관과 하멜등대입니다.
어디에서 봐도 아름다운 여수 야경, 곳곳에 볼거리도 가득합니다.
이순신광장 전라좌수영 거북선과 여수 해양공원에서의 여수 밤바다 야경
여수 종포해양공원(여수항해양공원)의 여수 밤바다 야경 및 해물삼합거리 풍경
여수 밤바다와 함께하는 여수 낭만포차거리, 인기메뉴 및 가격
그리고 여수 해물삼합거리를 지나면 거북선대교 아래에 하멜전시관이 있고, 바다 쪽으로 길게 난 방파제를 따라가면 하멜 등대가 있어 잠시 들렀습니다.
하멜전시관은 저녁이라 전시관 관람은 못했고, 하멜등대오 가는 길에 하멜 이야기가 적혀 있어 하멜표류기 이야기를 풀어볼까 합니다.

여수해양공운(종포해양공원) 동쪽에 자리한 하멜등대
10m 높이의 붉은색 등대인 하멜등대는 언제나 개방된 곳이라 아무 때나 방문할 수 있습니다.
1653년 헨드릭 하멜의 동인도회사 소속인 스페르웨르호가 제주도 부근에서 태풍을 만나 난파되었습니다.
하멜은 다른 생존자들(총 64명)과 함께 당시 유럽에는 전혀 알려져 있지 않은 조선에서 왕명에 의하여 13년 동안 억류되었었는데, 그가 마지막으로 4년간 한국땅에 머물렀던 곳이 바로 여수인 것입니다.
1663년부터 1666년까지 4년간 여수의 전라좌수영에 억류되어 있다가 1666년 9월에 일본으로 탈출하여 고향으로 돌아갔다고 합니다.
네덜란드 고향으로 돌아간 하멜은 조선에서의 생활을 기록한 하멜표류기라는 책을 발행해서 유럽에서 큰 인기를 끌었고, 조선 입장에서는 서양에 처음으로 책을 통해 알리게 된 계기가 된 것입니다.
여수시에서는 이런 하멜과의 인연으로 하멜 기념사업을 실시해 오고 있는데요.
이곳에 하멜전시관과 하멜 등대를 세웠고, 당시 하멜 일행이 근로했던 동문동 일대를 하멜로로 지정했습니다.
하멜 등대에 이르는 방파제입구에는 하멜 동상이 세워져 있는데, 이는 옙하트만이 조각하여 네덜란드의 호르큼시에 세운 하멜 동상과 동일한 것으로 1657년부터 1663년까지 하멜이 억류되어 있던 강진과 여수에 세워졌다고 합니다.

여수 해양공원 동쪽에 자리한 여수 해물삼합거리의 화려한 야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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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멜등대 입구에 있는 하멜전시관
하멜전시관은 하멜 일행이 억류되어 생활했던 여수 종포(현재의 위치)에 세워진 전시관으로, 하멜의 조선에서의 생활과 여수를 탈출하기까지의 여정을 담고 있습니다.
하멜 일행과 하멜보고서 모사본, 17세기 네덜란드와 조선의 국가 운영 비교, 하멜의 일대기, 여수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다루고 있습니다.
관람시간은 09:00~18:00, 휴관일은 매주 월요일, 관람료는 무료입니다.


하멜등대로 가는 길에는 하멜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1. 공식기록으로서의 하멜 이야기
본 이야기는 하멜이 조선에 억류된 기간(1653.8.~1666.9) 동안 받지 못한 임금을 동인도회사에 청구하기 위하여 작성한 업무보고서의 내용과 1668년 네덜란드에서 출판된 하멜 보고서에 실려 있는 목판화본 삽화를 인용하였으며, 참고자료는 전라 병영성 하멜기념관으로부터 협조를 받았다.
2. 태풍을 만나 난파되어 제주도에 표착
1650년 6월 휘엘 스트라위스호를 타고 네덜란드 테셀항을 출발하여 1651년 7월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 도착하였다.
1653년 6월 스페르베르호를 타고 타이완을 거쳐 일본 나가사키로 향하던 하멜 일행은 8월 태풍을 만나 64명 중 36명이 살아 제주도에 표착하였다.
제주에서는 네덜란드 출신 박연안(안 얀스 벨테브레이)을 만났으며, 1654년 4월 탈출을 시도하였으나 실패하였다.
제주도 서귀포시 안덕면 사계리 용머리해안 일대에도 하멜기념관과 하멜상선전시관이 있는데요.
하멜의 생애, 당시 네덜란드와 조선의 사회와 문화 등을 볼 수 있는 자료들을 전시하고 있습니다.

3. 서울로 이송
전임 제주목사 이원진의 진언에 따라 1654년 5월 하멜 일행을 서울로 상경시키라는 효종의 명령서가 도착하여, 그해 6월 배를 타고 제주를 출발하여 전라도 해남에서 말로 갈아탄 후 영암, 나주, 장성, 임압산성, 정읍, 태인, 금구, 전주, 여산을 지나, 충청도 은진, 연산, 공주를 거쳐 서울에 도착하였다.
4. 조선의 군인으로 생활
1654년 6월 서울로 옮겨온 하멜 일행은 처음에는 통역들이 근무하는 사역원에 수용되었고, 이들은 효종을 알현하여 일본으로의 송환을 요청하였다.
그러나 조선의 북벌정책에 따른 군사력 강화 목적에 따라 거절당하고, 임금님의 친위대인 훈련도감에 배치되어 호패와 무기를 지급받아 군인으로 생활하였다.

5. 청나라 사신행렬 앞에서 탈출 소동
조선 정부는 청나라 사신 방문 시마다 하멜 일행을 남한산성으로 숨겼으나, 일행 중 2명이 서울에서의 고된 생활을 견디지 못하고 청나라 사신 행렬을 헤집고 들어가, 본국으로의 송환을 호소하며 탈출하려는 사건을 일으켰다.
탈출이 실패로 돌아가자 하멜 일행은 1년 9개월 만인 1656년 3월 강진 병영으로 유배되었다.
6. 강진 병영에서의 생활
유배된 하멜 일행은 약 7년 동안 강진 병영에서 부역에 동원되어 병영성 광장과 장터의 풀을 뽑고 청소하는 일을 하였다.
1660년 부임한 절도사 구문치가 비교적 활동의 자유를 주어 집과 가구, 땔감을 마련하여 무던히 평화로운 삶을 살아가고 있었으나, 3년 이상 기근이 계속되자 1663년 3월까지 생존한 하멜일행 22명은 남원, 순천 그리고 전라좌수영인 여수에 각각
분산되었다.

7. 여수 좌수영 생활과 탈출
여수로부터 온 하멜 일행은 나뭇가지를 잘라 화살을 만들고, 땔감을 젓고, 새끼를 꼬는 일 등 고달픈 노력을 했다.
끝이 없는 부역과 노예와 같은 생활에 지친 하멜 일행은 탈출 계획을 세워 1666년 9월 순천에 있었던 항해사 얀 피터손을 비롯한 8명을 구해 여수 종포(현재의 위치)에서 밤늦은 시간을 틈타 출항하였다.
8. 그리운 고향으로...
하멜 일행은 여수를 출항한 지 3일 만에 탈출에 성공하여 1666년 9월 일본 고토 지역에 표착했다.
이후 나가사키를 거쳐 1667년 11월 자카르타에 도착했다.
자카르타로 돌아온 하멜은 홀로 남아, 직접 작성한 하멜 보고서를 근거로 밀린 임금을 받고자 노력했다.
이후 조선에 잔류되었던 나머지 일행이 돌아오자 고국을 떠난 지 20년 만인 1670년 고향으로 돌아갔다.

빨간 등대라 밤에 더욱 운치 있고 아름다운 것 같습니다.



하멜 등대의 뒤편에는 하멜 일행의 귀향 장면을 그린 삽화가 새겨져 있습니다.
하멜 등대에서 바라본 여수 해양공원 일대의 여수밤바다 야경을 영상으로 감상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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