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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 여행

청주 중앙공원 산책, 도심 속에서 만난 힐링 공간(압선루, 압각수, 병마절도사영문)

by 일상행복 주식회사 2025. 6.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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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의 원도심(구도심)은 청주의 명동이라 일컫는 성안길 일대를 말하는데요.

 영화관, 식당, 옷집 등이 밀집해 있어 젊은이들이 많이 찾는 번화가이며, 조선시대 청주읍성 안에 있는 지역이라 성안길이라 부르고 있습니다.

 

SNS에서 핫한 청주 성안길, 걷다 멈추게 되는 성안길의 매력

 

 

성안길의 중심이라 할 수 있는 곳은 청주 중앙공원.

청주시 한가운데에 있는 시민들 휴식처로 선인들의 숨결이 서린 압각수, 충청도 병마절도사 영문, 망선루 등 문화유산이 산재한 공원이기도 합니다.

또한 조헌 선생과 영규대사를 기리는 비와 한봉수의 송공비, 박춘무의 비 및 서원향약비 등의 비석들이 있습니다.

 

청주중앙공원을 방문했을 당시에는 올해 10년째를 맞이한 청주 국가유산 야행이 열리고 있던  때였습니다.

 

청주 야행은 청주의 대표적인 야간 역사문화 체험축제로, 고려와 조선시대 유산이 밀집된 청주 원도심을 배경(성안길 일대)으로 열리는 야간 축제입니다.


금년 청주 야행은 청주중앙공원, 용두사지철당간, 청년카페 점프스테이션, 성안길, 그리고 충북도청에서의 빛의 기록, 미디어파사드와 산업장려관에서의 속편한 연구소 전시가 진행됐습니다.

 

 

청주중앙공원에서는 제1장 문화의 기록이라는 내용으로 중앙공원 망선루와 압각수, 병마절도사영문 등을 중심으로 지역 예술단체와 원도심 국가유산이 어우러진 축제로 진행되었습니다.

 

[청주 국가유산야행] 충북도청 미디어파사드

SNS에서 핫한 청주 성안길, 걷다 멈추게 되는 성안길의 매력

청주 원도심 보물, 용두사지 철당간의 역사 산책

 

청주 중앙공원 입구에 있는 비석들

 

이 중 하나는 청주 조헌전장기적비입니다.

임진왜란 때의 의병장 조헌(1544~1592)의 청주성 탈환을 기념하기 위하여 세운 것으로, 현재의 서문동에 세웠던 것을 일제강점기에 중앙공원 내로 이전한 것입니다. 

 

매년 청주성 탈환일에 조헌, 영규대사와 의병들을 추모하는 추모제가 중앙공원 기적비 앞에서 거행되고 있다고 합니다.

 

청주 중앙공원 일대 모습

공원 규모는 그렇게 크지는 않고, 어르신들의 놀이터로 애용되고 있는 모습이었습니다.

 

청주 망선루

 

고려시대 청주관아의 객사 동쪽에 있던 누각 건물로 취경루라 불리던 것입니다.

청주에 남아 있는 목조건물 가운데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1361년(고려 공민왕 10) 홍건적의 침입을 물리치고 궁궐로 돌아가다 청주에 머무른 기념으로 과거시험을 치렀는데요,.

이때 합격자의 방을 취경루에 붙였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1461년 (세조 7)에 청주목사 이백상이 중수하고, 한명회가 누각 이름을 망선루라 고쳤습니다.

 

그 후 여러 차례 중수된 후 일제강점기에 철거되었는데요.

1923년 남문로 제일교회 뒤에 옮겨 교육과 집회장소로 활용했습니다.

 

그 후 가둥이 심하게 부식되자 2000년 12월 현재의 자리로 정면 5칸, 측면 3칸의 2층 팔작지붕의 옛 모습으로 이전 복원시킨 것이라고 합니다.

 

청주 국가유산 야행 제1장 문화의 기록의 무대가 망선루입니다.

빛이 그린 유산, 2030 청춘 야간연회 을사갑회도, 달빛 야학당, 저잣거리 일타강사, 전통놀이 올림픽, 한복체험 등의 행사가 열렸습니다.

 

그리고 망선루 아래쪽은 청주 국가유산 야행 제2장 역사의 기록의 무대가 만들어져 있습니다.

 

초가부스와 메인무대로 이루어진 곳으로 충북안전체험관과 함께하는 금화도감, 기능분야 10인의 기록, 신의 기록, 꿈을 넘는 남부상 등의 행사가 진행된 곳입니다.

 

청주 중앙공원 모습

 

시원한 그늘 아래는 어르신들의 쉼터가 되었네요.

 

전체 인구 가운데 65세 이상의 노인 인구가 차지하는 비율이 20% 이상인 사회를 초고령사회라고 하는데요.

우리나라도 초고령사회에 진입하면서 언제부터인가 동네 공원마다 어르신들이 부쩍 늘어난 모습을 자주 보게 되는 것 같습니다.

 

순교자 현양

조선시대 군대 주둔지인 충청도 병마절도사 병영이 있던 자리로 1799년 천주교 신자인 복자 원시보 애고보가 1800년 복자 배관겸 프란치스코가 이곳에서 순교한 곳이라고 합니다.

 

청주 중앙공원 가운데에 있는 청주 압각수

고려시대 청주목의 객사문 앞에 있었던 나무 가운데 유일하게 살아남은 1,000년의 역사가 담긴 은행나무입니다.

 

1390년(고려 공양왕2) 5월에 이색, 권근 등 10여 명이 이성계의 반대파로 지목되어 총주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이때 마침 큰 장마로 물에 빠져 죽게 되었을 때 이 나무에 올라가 죽음을 피하게 됐다고 하는 전설이 내려오고 있습니다.

 

압각수의 높이는 30미터, 밑둘레는 8.6미터, 수령은 900여년입니다.

 

청주 압각수가 있던 곳은 청주객사 마당이었는데 일제강점기에 충북도청이 이곳에 있다가 이전하면서 공원으로 조성되었습니다.

 

청주 압각수 주변 풍경

이곳 역시 청주 야행 행사장으로 곳곳에 야간 조명들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대한민국 독립기념비

과거 청주중앙공원은 앞에서 본 것처럼 비석이 많아 비림공원이라 불리기도 했다고 하네요.

 

청주 충청도 병마절도가 영문

청주읍성 안에 있던 충청도 병마절도사영의 출입문입니다.

 

이곳 안쪽의 병영에서 종2품의 병마절도사가 충청도의 군사업무를 주관했는데요.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으면서 청주의 군사적 중요성이 강조되자 1651년(효종 2) 해미에서 병영을 청주로 옮겨온 것이라고 합니다.

 

청주 충청도 병마절도가 영문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2층 누각입니다.

1층 가운데에 대문을 달아 출입하도록 했다고 합니다.

 

기둥은 네모진 높은 화강암 주초 위에 세워 대문의 장중함과 안정감을 주었고, 기둥 아래쪽이 비에 젖아 썩는 것을 방지했습니다.

 

2층은 우물마루를 깔아 누각으로 사용할 수 있게 했고, 계자난간을 설치하여 어름다움을 장식했습니다.

 

청주 충청도 병마절도가 영문은 조선 후기 병영의 출입문 형식을 잘 보여주며 나무를 다듬는 방법, 지붕의 추녀곡선 등이 정교하고 세련되어 아름다운 전통 목조건축물의 진수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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