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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 여행

예산 화순옹주 홍문과 월성위 김한신 묘

by 일상행복 주식회사 2025. 7.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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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사 김정희(1786~1856)는 조선 후기의 대표적인 학자이자 서예가, 금석학자, 실학자입니다.

한국 서예사와 학문사에서 가장 독창적이고 영향력 있는 인물로 본관은 경주 김씨, 자는 원춘, 호는 추사, 완당 등입니다.

 

전통적인 조선의 서예에서 벗어난 추사체를 완성했고, 제주도 유배기간에 그린 세한도 등은 예술성과 철학이 결합된 걸작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예산군 신암면 용궁리에는 추사가 나고 자란 곳으로 추사 김정희 유적지가 있는데요.

추사 김정희 고택, 김정희 묘, 추사기념관울 비롯하여 증조부인 월성위 김한신 묘와 화순옹주 홍문, 김정희가 청나라에서 가져와 심은 용궁리 백송, 김정희 선생 필적 암각문이 있는 그가 수도하던 화암사 등 어 그의 자취와 숨결을 느낄 수 있는 곳입니다.

 

추사 김정희의 생애, 예산 추사기념관

[예산 여행] 추사 김정희 고택과 김정희 묘

예산 백송공원 및 용궁리 백송

추사 김정희 집안의 원찰, 화암사와 김정희 선생 필적암각문

 

오늘은 추사 김정희 고택에서 100여 미터 북쪽에 있는 김정희의 증조부인 월성위 김한신 묘, 영조의 둘째 딸이자 김한신의 부인인 화순옹주 홍문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월성위 김한신의 묘와 화순옹주 홍문으로 가는 길

김정희 유적지 주변을 깔끔하게 잘 가꾸어져 있더군요.

 

월성위 김한신 묘

 

월성위 김한신(1720~1758)과 그의 부인 화순옹주(1720~1758)가 함께 묻힌 합장묘입니다.

태어난 해도 같고, 죽은 해도 같은데요.

태어난 해가 같은 것은 우연이고, 죽은 해가 같은 것은 김한신이 죽자 곡기를 끊어 그 해 그녀도 남편을 따라 죽었기 때문입니다.

 

김한신은 추사 김정희의 증조할아버지이고, 경주 김씨 가문의 원찰인 화암사를 중건한 사람입니다.

 

당시 영의정이었던 김흥경의 아들인 김한신은 13세에 영조의 둘째 딸 화순옹주와 결혼하여 월성위에 봉해졌습니다.

인물이 잘생기고 총명해 영조의 사랑을 받았고, 벼슬은 오위도총부 도총관, 제용감제조를 지냈습니다.

 

월성위 김한신은 귀한 신분임에도 평소 비단으로 만든 옷을 입지 않고 항상 겸손하게 몸을 낮추어 생활했다고 합니다.

특히 글씨를 잘 써서 시책문을 많이 썼고 전각에도 뛰어났다고 합니다.

 

월성위 김한신 묘는 주변에 곡장이 둘러져 있고, 좌우로는 석주와 석인상이 1기씩 세워져 있습니다.

묘의 앞쪽에는 석상, 석등이 세워져 있고, 묘소 앞에는 1761년(영조 37)에 세운 묘비에 영조의 친필이 새겨져 있습니다.

 

주변에 묘를 지키기 위해 53칸의 재실이 건립되었으나 불 타 없어진 상태입니다.

 

월성위 김한신 묘에서 100여 미터 떨어진 곳엔 화순옹주 홍문이 있습니다.

영조의 둘째 딸이자 김정희의 증조모인 화순옹주의 정절을 기리는 열녀문입니다.

 

13세에 영의정 김흥경의 아들 김한신과 결혼했는데요.

김한신이 39세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나자 화순옹주는 14일을 굶어 남편을 따라 세성을 떠났습니다.

 

화순옹주는 7일 동안 곡기를 끊고 남편을 따라가려고 시도했는데, 이를 걱정한 영조는 직접 화순옹주 집에 거둥하여 딸을 위로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고 합니다.

 

화순옹주(1720년생)는 영조로부터 이복동생인 사도세자(1735년생)에 비해 사랑을 많이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사위가 된 김한신에게 서울과 이곳 예산에 땅과 집을 지어주었고, 김한신이 원찰로 삼은 화암사를 중건하니 그 이름을 영조가 지어줬다고 합니다.

 

영조는 옹주가 아버지의 말을 따르지 않고 죽었으니 불효라 하여 열녀문을 내리지 않았으나 후에 정조가 열녀문을 내렸습니다.

화순옹주는 조선왕실에서 유일하게 나온 열녀인 것입니다.

 

화순옹주 홍문 현판

문의 윗부분에 홍살을 세우고 붉은 칠을 한 현판을 걸었습니다.

 

''열녀 수록대부 월성위 겸오위도총부도총관 증익정효공 김한신 배화순옹주지문'


“정절과 효성을 갖춘 열녀, 남편 김한신은 정3품 ‘수록대부’요, 월성위 작위를 받았으며, 조선의 군권을 맡은 오위도총부의 도총관을 지낸 인물이다.
그는 사후에 '정효공'이라는 시호를 받았고, 배우자는 조선 순조의 따님인 화순옹주이다.
이 정려문은 그 문중(가문)에 세운 것이다.”

 

약 200여 평의 대지 위에 낮은 담장을 두르고 출입문의 정문에 홍문을 세웠는데요.

재실건물이 있었지만, 지금은 사라지고 사진에서 보듯 주춧돌만 남아 있습니다.

 

재실의 주춧돌

 

화순옹주 홍문 옆에는 백송공원이 있고, 백송공원을 지나 300여 미터 가면 추사 김정희가 청나라에서 가져온 백송을 심어 키운 천연기념물 용궁리 백송이 있고요.

그 위에는 김정희의 고조부 급류정 김흥경 묘가 있습니다.

 

예산 백송공원, 용궁리 백송과 급류정 김흥경 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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